계축일기[ 癸丑日記 ]
인조반정 뒤 인목대비의 측근 나인이 썼다고 하며, 인목대비가 정명공주를 임신했을 때 광해군 및 측근들로부터 심한 부당한 대우를 당하였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광해군은 서자이기에 적자인 영창대군(선조와 인목대비의 자)과 인목대비를 견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광해군은 인목대비가 광해군을 저주하는 일을 하였다고 누명을 씌워 인목대비의 나인 30여 명을 고문하여 죽은 이도 있었습니다. 또한 광해군은 박응서, 서양갑, 박치의, 심우영, 허흥인, 김평손, 김경손 등 양반가 7명의 서얼들이 영창대군을 옹립하고자 했다는 역모사건-칠서 역모사건-을 조작하여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을 죽였으며, 8세인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위배까지 보냈습니다.
이후 영창대군을 감시하던 강화 부사는 영창대군을 집안에 가두 고서 엄청난 양의 장작을 때었습니다. 당시 영창대군은 앉지도 눕지도 못한 채 창살을 부여잡고 울부짖다가 기운이 다하여 죽었습니다.
그 후 계축일기는 10년 동안 인목대비가 갇혀 있던 서궁에서 인조반정으로 인하여 나오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인목대비가 칩거하였던 서궁은 현재의 덕수궁입니다.
영창대군 묘 :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고은리 산 24-5
인목대비의 묘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 4-3 (목릉 : 선조, 의인황후 박씨, 인목황후 김씨의 묘가 함께 있습니다.)
칠장사 : 경기도 안성시 칠장로 399-18(죽산면 칠장리 764) - 칠현산(七賢山)에 있는 절로서 인목대비가 영창대군을 잃고 폐모의 위기에 몰려 용주사의 암자였던 칠장사에 피해 있을 때 억울하게 죽은 친정아버지와 영창대군을 생각하며 칠언시를 쓴 곳입니다.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 (仁穆王后御筆 七言詩) :
老牛用力已多年 (늙은 소는 힘을 다한 지 이미 여러 해)
領破皮穿只愛眠 (목이 찢기고 가죽 뚫어져 그저 달디 단 잠뿐이로구나)
犁耙已休春雨足 (밭갈이는 이미 끝나고 봄비는 충분히 오는데)
主人何苦又加鞭 (주인은 어이하여 괴로워하며 또 채찍을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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